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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구

하이든의 생애와 작품, 음악사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알아보자

by Culture오아시스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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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토록 음악의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경험했으며, 자신이 이러한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던 하이든의 생애와 작품, 음악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이든 일러스트

 

 

생애

 

남부 오스트리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8살 때 비엔나에 있는 스테판 대성당의 합창단원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기초적인 음악 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변성으로 소프라노 음성을 낼 수 없게 된 17살에 성당을 떠나야 했고 하이든은 그 이후 계속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이면 거리를 흘러 다니는 유랑악단에 합류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하이든은 틈틈이 작곡공부를 계속하였습니다. 23살 되던 해, 하이든은 포르포라라는 이탈리아 작곡가를 만나게 됩니다. 하이든은 포르포라로부터 성악, 이탈리아어, 작곡 등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를 통하여 비엔나 음악계의 여러 지도자들을 알게 됩니다. 이 시기에 건반악기를 위한 곡들과 디베르티멘토 작품 등을 만들었고, 초기 현악 4중주 곡들도 작곡하였습니다. 29살에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취직을 함으로써 비로소 하이든의 생활은 안정되었습니다. 생활에 안정을 찾은 이후 30여 년간 하이든은 엄청난 양의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중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것은 현악 4중주와 교향곡들이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배려로 하이든은 비엔나에서 여러 곡의 현악 4중주를 발표하고 출판하게 됩니다. 당시의 음악 애호가들 중 수준 높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모여 특히 즐겨 연주하던 곡이 현악 4중주였기 때문에 하이든의 명성은 차츰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판권 협정이 없던 때였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하이든의 작품이 무단으로 출판되었고, 하이든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가짜 작품이 많이 나돌았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하이든은 유명해졌고 유럽 전역으로부터 작곡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교향곡 82-87번인 파리 교향곡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습니다. 1790년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사망하자, 뒤를 이은 안톤 후작은 소수의 관현합주단을 제외하고 후작가의 악단을 해산시켰습니다. 하이든도 후작가를 떠나 빈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마침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음악 프로모터였던 잘로몬이 하이든을 영국으로 초청합니다. 이미 60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하이든으로서는 바다 건너 영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긴다는 것이 모험이었으나, 걱정과는 달리 하이든은 런던에서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그 당시 영국은 상공업과 예술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하이든은 영국 청중들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동료음악들의 찬사, 귀족들의 우대,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런던에서의 성공은 일개 궁정악장으로 지낸 수십 년의 세월보다 하이든에게 훨씬 더 큰 감격과 행복이었습니다. 더구나 유명한 악처였던 아내 때문에 일생 평화를 얻지 못했던 하이든은 런던에서 레베카 슈레터라는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이든은 위트가 넘치고 관대한 성품을 지녔으며 평생 겸손했습니다. 그는 많은 위대한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마지막 음악회였던 비엔나의 대학 강당 공연에는 베토벤까지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참석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 

교향곡:

  • 교향곡 6번 '아침', Hob. I:6
  • 교향곡 7번 '정오', Hob. I:7
  • 교향곡 8번 '저녁', Hob. I:8
  • 교향곡 44번 '슬픔', Hob. I:44
  • 교향곡 45번 '고별', Hob. I:45
  • 교향곡 49번 '파리', Hob. I:49
  • 교향곡 94번 '놀람', Hob. I:94
  • 교향곡 100번 '군악대', Hob. I:100
  • 교향곡 101번 '시계', Hob. I:101
  • 교향곡 103번 '큰 북', Hob. I:103
  • 교향곡 104번 '런던', Hob. I:104

오페라: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762)
  • 세상의 달콤한 혼란 (1766)
  • 섬의 여왕 (1777)

피아노 소나타:

  • 피아노 소나타 Hob. XVI:20
  • 피아노 소나타 Hob. XVI:32
  • 피아노 소나타 Hob. XVI:49
  • 피아노 소나타 Hob. XVI:52

현악 4중주곡:

  • 현악 4 중주곡 Hob. III:35
  • 현악 4중주곡 Hob. III:50
  • 현악 4중주곡 Hob. III:64
  • 현악 4중주곡 Hob. III:70
  • 현악 4중주곡 Hob. III:74
  • 현악 4중주곡 Hob. III:75
  • 현악 4중주곡 Hob. III:76
  • 현악 4중주곡 Hob. III:81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음악사에 끼친 영향 

흔히 하이든이 런던 시절에 작곡한 12개의 교향곡이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지만, 그곳에서 대규모의 합창단이 부르는 헨델의 성가를 듣고 하이든이 깊은 감명을 받아 작곡한 <천지창조>와 <사계> 또한 하이든의 작품세계에서 큰 의미를 갖는 불후의 명작입니다. 1794년까지 비엔나에 머무르고 있던 하이든은 6개의 현악 4중주를 작곡하는데, 감상층이 일부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만 국한되었던 4중주가 대중화되면서 하이든의 작품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과거의 부드러운 음악으로 시작하던 형식에서 벗어나 이때부터의 곡들은 음악회를 시작할 때의 산만한 분위기를 압도하기 위해 크고 위엄 있는 음악으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그는 청중을 의식하는 작곡가였으며 한편으로는 그의 밑에 있는 악사들에게 자상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율이 아름답고 맑은 그의 작품은 형식적인 면에서 명료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또 음악을 익살스럽게 처리하곤 하여 음악에 있어서도 유머의 대가로 쏜꼽힙니다. 교향곡 45번 <고별>연주 시에는 바쁜 연주 일정 때문에 몇 달간이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단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반영했는데, 곡의 끝 부분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연주를 마치게 하고, 자기 파트의 연주가 끝나면 촛불을 끄고 무대를 떠나게 하였습니다. 이 연주회에 참석하였던 에스케르하지 후작은 하이든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리고 단원들에게 휴가를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교향곡 94번은 느린 악장에서 갑자기 ff가 약 박자에 나오도록 작곡, 졸던 청중을 깜짝 놀라게 한다 하여 <놀람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이든의 작품에는 템포나 강약 처리, 혹은 자연의 소리 등을 흉내 내어 듣는 이로 하여금 즐거운 연상을 하게 하는 등 기교가 넘치는 곡이 많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로 불리는 하이든은 현악 4중주를 교향곡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뛰어난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또한 <천지창조>와 <사계>를 만년에 발표함으로써, 하이든은 77년의 일생을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특히 천지창조는 성숙한 스타일을 구사하여 비엔나 음악의 오랜 전통과 영국에서 활약했던 헨델의 음악 정신을 극적으로 표현한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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