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재 의료사태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빅 5 상급병원의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유와 의사들이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이유, 필수과와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진짜 이유, 그리고 정부가 밝히지 않는 - 의사증원에 따른 의료보험료 인상 문제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유
필수과는 의료수가가 낮아서 뇌수술, 심장수술등의 수술은 하면 할수록 병원에 적자가 쌓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대형 상급병원들은 급여가 높은 전문의 인원을 최소만 고용하고 부족한 인력을 최저임금 수준의 싼 노동력인 전공의(레지던트)로 채워서 돌려야 적자를 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은 저임금의 전공의를 갈아서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 거고요.
상급병원에 남으려면 [의대 6년 -> 인턴 -> 레지던트(=전공의) -> 전문의 -> 펠로우(=전임의) -> 조교수 -> 부교수 -> 교수]의 과정을 거치는데 현재 상급병원 전공의들은 전문의나 교수의 길을 가려고 해도 병원에서 비용문제로 그런 자리들을 많이 만들지 않다 보니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문제를 단순화한다면, 의대증원정책은 저임금 전공의를 갈아 넣는 현재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좌절한 사태인 겁니다. 선진국 병원들의 경우, 전문의 전임의 이상이 훨씬 많고 전공의는 전체의 10% 정도인데 우리나라 빅 5는 전공의 비중이 30%를 넘습니다.
전공의들이 지금까지 저임금과 무거운 노동강도를 견뎌온 것은 '현재의 의료시스템 (특히 필수과) 이 문제가 너무 많아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료개혁이 올 수밖에 없다'는 지배적인 예측 때문이었는데 이번 윤정부의 의료개혁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나오자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좌절이 표출된 거라고 합니다.
필수과에 의사가 부족한 이유
의사들이 필수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낮은 의료수가와 과도한 노동강도,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현 상태로 가면 10년 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필수과 의사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생사를 오가는 중병이어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서 몇 달 또는 1년씩 기다리다 의사를 못 만나고 죽는 외국 꼴이 나게 되는 겁니다.
현재 당장 필요한 의료개혁은 필수과를 살리기 위한 재정확보와 의료소송으로부터 의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장치마련, 의료전달체계(= 병의 경/중에 따라 1,2,3차 병원진료통제체계) 확립 등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의사들은 상급병원 필수과가 아니라 거리에 있는 성형, 피부, 안과 등에 있습니다. 의사증원의 낙수효과라는 건 효과가 있을 리도 없지만, 위중한 상황에서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는 필수과 의사들을 모욕하고 그들의 자긍심과 남은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의료현장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진짜 이유
지역의료가 무너져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진짜 이유는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방 인구 감소로 환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환자가 줄어드니 기존 의료기관들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어 도태되고, 환자들이 장비가 낙후되고 인력이 부족한 지방병원들을 외면하고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들어 지역 병원에 환자가 없는 겁니다.
서울 빅 5 병원 응급실의 절반이 경증환자라는데 이 현상은 상급병원으로 오는 환자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경증이고 중증이고간에 다들 서울과 수도권에 소재한 대형상급병원으로 몰리다 보니 중간급 병원과 지역병원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습니다.
또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부족한 것은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팔수과 의료수가가 낮고 지방에 환자가 없어서입니다. 우리나라는 필수과 수가가 낮아서 산부인과 하나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40-50명의 산모를 진료해야 한다는데 지방인구가 줄고 있어 병원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소아과의 경우도 아이들 진료에는 어른과 다르게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가는데 수가가 낮다 보니 인구가 없는 곳에서 병원유지가 불가능한 겁니다. 지방폐교가 늘고 있는 것이 선생님이 부족해서일까요?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폐교되는 거잖아요 ㅠㅠ 교대인원을 증원해서 선생님들을 지방에 증원하면 지방학교들이 살아나나요?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
똑같은 문제입니다.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를 지방으로 돌려보내야 지역경제가 살 듯, 서울상급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는 환자들을 각 지역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야 지역의료가 살아납니다. 이걸 하는데도 오랜 세월과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텐데요. 필요 없는 미래의 의사를 만드는데 10조를 쏟아붓고 그 의사들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의료보험료를 몇 배 더 내야 하고... ㅠㅠ
정작 필요한 합리적 해법은 없고 현재의 문제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10년 후의 의사를 증원시키기 위해서 남아있는 의보재정 20조 중 10조를 쏟아붓는다고 하니 일반인의 눈에도 정책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 의아합니다. 10조를 쏟아부어 의보재정이 위태로워지는데 당장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10년 후를 대비한다???
옆나라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조심스럽게 의사를 증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필수과 의사 확보에 실패해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를 수입합니다. 점진적으로 무리 없이 의사를 증원한 일본도 실패했는데 의대교육여건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식하게 갑자기 2 천명씩 만 명 증원을 고집하는 저 정책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사증원은 필수과 문제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일본이 증명했는데 그걸 우리 대한민국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또 증명해야 할까요? 의사를 8천 명 증원하는데 54조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늘어난 의사인구를 다시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의사 만 명 증원뒤에 숨겨져 있는 의료보험료 인상의 비밀
의사가 66% 증원되면 우리가 부담하는 의료보험료도 따라서 66% 인상된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이 팩트에 더해서 증가한 의사들이 새롭게 창출해 낼 잠재적인 의료수요까지 감안하면 대략 100% 인상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여기다 저출산으로 생산인구가 반토막 나고 있어 우리 아이들 세대는 현재보다 4배 많은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재 의료보험료가 소득대비 7%인데 28% 까지 가는 암담한 미래가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대한민국은 의사를 줄여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국민의식이 변화되어어 경증의료소비도 줄여야 합니다.
큰 틀에서 본다면 의대증원은 미래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정책개혁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는 겁니다. 필수과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의대증원은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의료계의 동의없이 밀어붙이는 정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공확률이 낮은 의대증원정책으로 인해 의사가 증원될 경우, 비례해서 국민들의 의료보험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남들보다 몇 배 열심히 공부해서 그 어려운 자리까지 간 전공의들이 그때까지의 노력과 시간, 커리어가 무효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다 때려치우고 나갔을까를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국민이 부담하게 될 의료보험료 상승의 진실은 감추고 이 사태를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호도하고 있는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의대증원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환자분들, 우리 사회의 귀한 자원인 많은 전공의들....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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